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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1일
'장가는 교회 다니는 여자에게 가는게 좋을 것이다.'
현실주의자로서의 종교와 종교 그 자체를 벗어난 분석은 이런 것도 있었다. '일단, 교회에 나가서 만난 여자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하고, 그 압력 자체를 굉장히 큰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남자와 잘못되는 일이 생겨도, 그냥, 그 관계를 정리하는 것을 바로 선택하지 않는다.' 혼기에 이르러서도 엔간한 애인 하나 만들지 못한 남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만한 조언이었다. 실상, 그렇다. 그 공동체에 속해 있는 두사람의 관계는 적어도 그 공동체를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는 바로 다른 사람들의 판단, 평가,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로 지속된다. 설사 그 공동체 안에서 둘의 사랑이 불타올랐다가 가라앉아버렸다고 하더라도, 둘을 결속하는 것은 다름아닌 사람들의 울타리, 사람들의 굴레이다. 신앙에 대한 다소 냉정하고 성기고 어설프기 그지 없는 앞 서의 이야기의 부연으로, 나는 이렇게 얘기한다. 종교인은 설사 신앙을 잃어버렸더라도, 그 종교 공동체 안에서는 종교인으로서의 행위를 보이며, 그 행위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 종교인에 맞는 사고를 하고 있다는 증거를 사람들에게 다소나마 보여주어야 하며, 신앙의 대상이 바로 다른 종교인들이 갖고 있는 대상과 같은 것이다라고 다른 종교인들이 어렴풋이나마 느끼게끔 해야할 의무나 압력 비슷한 것이 생겨버린다. 교회라는 집단이 광범위하게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또하나의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한국인들의 가족주의와 종교의 결합이다. 가족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꼬치꼬치 한 집안의 관혼상제를 사람들 앞에 하나하나 다 광고해주는 시스템을 유지하여, 이른바 서로 다른 타인들의 가족들이 투명하게 서로를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마저 제시해주니, 솔직히 결혼을 위한 상대자를 찾고자 할 때, 이만큼 상대자를 파악하기 용이한 시스템 또한 드물다. 결혼 정보회사 시스템은 그냥 정보를 수집해서 서로 공유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결혼 정보회사가 이 시대에 제대로 된 결혼들을 만들어 내고 싶다는 이상향이나마 더 품고, 그 비전을 향해 노력한다면, 아마 결혼 상대자를 찾게 해주기 위한 공동체 시스템이나 커뮤니티를 만드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야 정상일 것이다. 그들이 벤치 마킹 해야할 것은, 타 결혼 정보 회사 종류가 아니라, 교회다. 그 집단, 그 공동체를 벗어나면, 그럼, 어떻게 되는가.....공동체 내에서 관계를 유지하도록 이끌고, 그 관계를 이른바 지켜주고, 눌러주었던 굴레들이 일거에 사라진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어떤 공동체에 속해서 서로를 잘 알게 되어 하는 것이 아닌 또다른 수많은 결혼의 양태들을 생각해본다. 결국, 사랑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공동체의 역할을 뛰어넘을 굴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나 이미 갖춰진 그 능력 자체였던 것일까? 그러나, 그런 굳건한 울타리를 하나 만들어보겠다고, 교회에 나가는 멀쑥한 혼기의 아저씨가 되기를 자처하고픈 생각은 내게 없다. 그것은 보다 심도 있는 성취를 추구하는 다른 동호회나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꼭 교회나 종교집단이어야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이 다름아닌, 자기 인생의 스토리를 잘 써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쓰디쓴 미소로 남게 된다. 그런데, 부가해서 할말은 그럼에도 남게 된다. 전통적인, 내지는 본능적인 가정 윤리는 이미 이 시대를 관통하면서 맹렬하게 부서져 내리고 있다. 진정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질서와 자연스러운 인간간의 소통을 위해서 적어도 어느 정도의 규범화된 체계를 그 종교 밖에서도 굳건히 찾고 유지할 수 있는 자기 규율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종교집단으로 회귀해서 다소 보수적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그 윤리의 울타리 안에서만 결혼이라고 하는 제도가 그나마 유지되고 버틸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다면, 인류사회에 다가온,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참인간을 회복하고 온전한 자기 의지를 발현하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개념은 어디서부턴가 불안정한 삐걱거림을 일으키게 만들게 될 것 같다. 브라이트라는 명확한 자기 정체성을 자기 자신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다름아닌 종교를 대치하는, 또는 종교의 불합리함을 상쇄할 수 있는 인류의 새 규범을 일으키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브라이트는 일정한 하나의 교리나 면밀히 짜여진 하나의 규범안에 꽉 조여서 행동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다. 단지, 자기 규율과 윤리만큼은 나름의 성실한 자세로 세워갈 수 있는 보다 현명한 개개의 브라이트들만이 브라이트라는 이름 자체를 부끄럽지 않은 단어로 유통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브라이트라는 단어가 보다 긍정적인 단어로 인식되는데에는 전통적인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하는 집단들이 밟아왔던 그 인증과정에 대한 나름의 고찰이 필요할 수 있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런 것이다. 이 사람은 '브라이트'구나, 나와 일련의 정치적, 종교적 견해에 어느정도의 일치성이 있는 사람이구나, 그러니까 이 사람과 결혼을 해도 되겠구나. 그리고, 그게 더 확고한 연결감과 결혼 생활의 좀 더 자연스럽고 지속성 있는 행복이 가능할 수 있겠구나......이런정도의 패턴적인 사고방식이 생기는 미래가 온다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결혼 적령기에 이르른 '나'자신의 자기 중심적인 감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브라이트'라는 명칭의 광범위한 전파는 결국, 브라이트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그러한 종류의 보다 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원들이라는 평판없이는 또한 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녀와 나의 울타리 또는 그와 나의 울타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는 그 긍정적인 영향력에 대한 상호간의 믿음과 확인에 달려 있는 것처럼, '브라이트'라는 이름의 전파는 이 사회가 이 사람들을 마치 하나의 배우자와도 비견될만큼 중요한 존재로서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원하던 원치 않던 일부나마 밟아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이 한국사회에서는 더욱더 그런 과정이 필요한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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