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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9일
4.2 대학로 #
그녀는 7시가 되도 나타나지 않았다. 두어번 전화를 해봤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고, 결국 기다리다 그녀의 티켓을 찢어버리고 연극을 보러 들어갔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연중인데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 받지 않고 있으려니 너무 늦었죠? 미안해요. 지금 마로니에 공원이에요. 라는 문자가 왔다. 유명세를 탄 연극인데다 안그래도 좁은 소극장 복도에까지 간이 의자를 놓아 지나가기가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겨우 겨우 사람을 헤치고 밖으로 나와 마로니에 공원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농구대 근처 벤치에 앉아있었다. 다가가자 그녀는 일어서면서 말했다. "지한씨..." "미안해요. 이쪽으로는 자주 나오지 않는 편이라 시간을 못맞췄어요.. 택시타구 왔는데 생각보다 많이 걸리더라구요." "이 시간대는 많이 막힐겁니다. 미리 전화라도 주시지 않구요. 전화 안받으셔서 안나오시는 줄 알았어요." "전화기가 어제 클럽에서 떨어뜨려서 그런지 켜졌다 꺼졌다 해요. 미안해요. 미리 전화 드렸어야 하는데 전화기는 꺼져서 안되구 택시 안에 있어서 전화 못했어요. 미안해요." "요즘 전화기들은 너무 복잡해져서 오히려 더 쉽게 고장나죠. 70년대의 기계식 전화기만도 못한 면이 있어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마치, 주머니 많이 달린 바지의 이 주머니 저 주머니를 뒤지면서 손가락과 기억으로 이런저런 물건들을 찾아 헤메이는 듯이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우리 그럼, 잠시라도 70년대로 가보지 않겠어요? 적당한 곳이 마침 떠올랐어요..." 아마도, 그 주머니에서 무슨 티켓이라도 발견했던 모양이다. 그녀가 이끄는데로 엄마 손 잡고 나들이 나온 5살 아이처럼 두리번거리며 대학로 뒷편의 오르막을 따라 골목길을 한참 걸어 들어갔다.. 도착했을 때쯤, 미로를 빠져나온 쥐가 느꼈을 만큼의 해소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현재의 미로였다면, 그곳은 과거로 빠져나가는 출구였다. 회화적인 느낌을 주는 아주 평면적인 2층짜리 주택. 창은 무미건조한 사각, 누구라도, 약간의 건축지식과 시멘트 만드는 법 정도만 알고 있다면, 지으려고 도전해도 괜찮을 모양이었다. 알 수 없는 문양의 검은 색 철제 문을 당겨 여는 순간 눈앞에 들어온 것은, 다 찌그러진 드럼통위에 고정된 탁자들 몇 개와 못과 각목 몇 개로 고정시켜놓은 의자들... 그리고 어두운 갈색의 의자들과 이상하게도 잘 어울리는 시큼한 냄새가 났다.. 거기에 음식냄새와 더러운 바닥, 회색빛의 흑백사진들이 담긴 액자들이 어우러져 어릴적 맡아보았던 향기를 느꼈다.. 어찌보면, 굉장히 상투적인 70년대 드라마에서 보기라도 했던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신기하죠? 누굴 데려오던 70년대 분위기라고 이야기하는 곳이죠." '아니요, 난 이곳보다 당신이 더 신기해요.' 하고 싶은 말은 중요한 타이밍엔 나오질 않는다. 4.3 마리화나 # 초등학교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 같은 스피커에서, 도어스의 짐 모리슨의 "LightMyFire"가 지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나오고 있다. '우리 같이 이 밤을 확 싸질러버리자구!(Try to set the night on fire!)' 이런 느낌으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다보니, 이건 왠걸...70년대의 한국에서는 짐모리슨의 노래따위가 멀쩡한 가게에서 틀어질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분명히, 그의 노래는 그 시절의 분위기상 금지곡이었을 거다...방탕아에 자유주의자, 미국 내에서도, 마약 복용 등으로 판금조치를 먹던 사람의 노래를 설마, 70년대의 멀쩡한 가게에서 틀리가... "70년대처럼 보이는 것 외에 또다른 특징이 이 가게에 있을까요? 없을까요?" "음악이 좀 구색이 맞지 않은 점이 있네요. 아니라면, 이 식당은 지하실이라든지, 보다 음침한 곳에 있었어야했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담배 한가치를 입에 물었다. 담배의 그림자가 창백한 보라색의 입술 언저리에서 흔들거린다. 실망스러운 듯 한쪽 입술을 실룩이고 있다. '뭘 잘못 짚었을까'. "아니, 그건 조금 핀트가 빗나갔네요." "또다른 특징이 있다는 이야기군요." "지한씨는 이른바 검열이나, 국가, 정부에 두려움 같은 거 있어요?" "그런 것 전혀 없이 살 수는 없잖아요." "이 가게는, 이 공간은 적어도, 그 두려움을 잊을 수 있는 곳이예요..." "70년대의 한국에 짐 모리슨의 모조품이라도 튀어나온다는 이야긴가요?" "아니요, 당신이 짐 모리슨 흉내를 낼 수 있는 곳이에요." '신기한게 아니라,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군...' 더이상 말을 이을 것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머리 속이 하얀 백지가 되었다.. 그녀가 랑콤 립스틱을 구찌 핸드백에서 끄집어내고, 그 밑에 깔린 입셍로랑 은색 담배갑에서, 또 한가치의 조금 짧아보이는 담배를 꺼내어서 주기 전까지, 그녀의 몸을 휘감고 있던 샤넬 스카프의 난해하게 보이는 무늬를 찬찬히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너무 고급스럽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그리고 사입는 것, 이마저도, 70년대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무슨 담배에요?...쿨럭..." "마리화나예요." 4.4 공범 # 그 가게가, 멀쩡한 그 가게가 그런 공간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위층은 마리화나를 피우기 위한 공간이 있었고, 지하 쪽은 좀 더 위험한 마약류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녀가 가게 주인과 웃으면서 몇마디 나눈 뒤로부터, 그 두공간은 나에게도 개방된 공간들이 되었다. 짐모리슨, 마리화나, 70년대... 무언가 척척 들어맞는 연상인양 느껴졌다. 몽환처럼, 그녀의 손길에 이끌려서, 드디어 내가 미리 알 수 있거나, 통제 할 수 있는 곳과는 상관없는 곳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마치, 폭력적인 정권이나 불의한 무리들에게 저항하는 기분마저 들어서, 왠지 내가 혁명적인 록가수 역이라도 맡아 영화에 출연중인 것만 같았다. "이런 것을 나에게 알려주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짐 모리슨과 도어스를 아는 남자에다, 싫다고 따돌려도, 쫓아오는 남자에다, 70년대의 어느부분을 칭찬할 수 있는 남자라면, 알려주어도 좋다고 생각하곤 했었어요." "그런 남자들이 한 두명은 분명히 아니었을텐데..." "난, 성격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걸 이해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바보처럼 이해해줄 사람이 나인가요?" "바보라고는 생각안해요" 얘기를 보다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막 두가치째의 마리화나를 다 폈을 때였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신비함과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알것 같은 순간...용기같은 것이 필요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정작 내가 용기를 낸 것은 그녀 자체가 아닌, 그녀와 연결된 '마리화나와 마약류'에 대한 금기를 깨는 것이었고, 그것을 통해서, 난 그녀 옆으로 보다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열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늑골 가까이에 왠지모를 긴장감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시선이 잠시 다가온다거나, 좀 더 가까이로 그녀가 올 때마다, 뭔가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근데 지난 번 클럽에서 봤을 때는 정말 기억 못하는 거야? 그 다음 날 네가 준 명함으로 전화까지 했었어." "그땐 마리화나 한 상태라 정신이 없었어.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더 있으면 사고칠 거 같아서 친구가 서둘러 집에 데려다 줬다고 하더라구. 그러니 기억못하는 게 당연하지. 그리고 난 모르는 전화번호는 안 받아." 그녀는 피던 마리화나를 비벼끄며 말을 이었다. "여긴 이 동네에서 유일한 장소야. 일주일만 장사를 하고, 순식간에 내용물은 다른 동네로 옮겨가지." "이곳에서 아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조금 있어, 하지만 이렇게 내가 이곳에 끌어들인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내가 신고라도 하게 된다면?" "넌, 지금 이미 세가치나 마리화나를 피웠어." (Roman's Story, 헌터D씨와, 까르페디엠씨의 +수정) [헌터D씨의 개인 위키 http://ost25.cafe24.com/ 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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