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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1월 01일
4.7 Home Theater 비디오방 #
비디오방이 그렇게 화려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실내는 고급스러웠다. 쇼파의 정의를 넘어선 푹신한 매트리스가 달린 대형 의자와 은은한 조명을 내뿜는 상제리제가 천정에 붙어 있었다. 벽걸이형의 LCD 평면 모니터가 웅장한 음향과 함께, 우릴 내려다보고 있고, 르네상스 시대를 떠올리게끔, 고딕 양식의 선이 굵은 부조가 창문에 셀로판 색상과 함께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이런 곳들을 어떻게 척척 알고 사는 것일까...? 가슴이 떨리는 것과는 별개로, 이 방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나는 도어스의 도입부분부터 현란한 이 방의 풍경을 하나하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영화의 화면이 눈 안으로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마리화나를 한대씩 피워문 이후에는 어느순간엔 웅장한 음향의 사이사이로 그녀의 숨소리와 목소리만이 도달하고 있었다. "짐 모리슨역에는 발 킬머보다는 브래드 피트같은 인물이 더 어울렸을 거란 생각이 들어" '브래드 피트의 외모에는 약점같은게 없어, 발 킬머 쪽이 오히려, 짐 모리슨의 느낌에 잘 어울려' 물론, 나는 이말을 꺼내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짐모리슨 역할을 하고 있는 발 킬머는 약간 언청이진 그 불완전한 입모양이 내가 가진 불완전한 부분들을 비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감정이입이 잘 되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짐 모리슨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을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상황 자체가 그에게는 더더욱 깊은 골짜기로 그를 밀어넣는 악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노래부른다. 나의 상처를 차라리 불살라버려 달라고, 차라리 상처 그 자체를 잃어버릴 수 있도록, 완전히 연소시켜달라고. 맥 라이언은 그의 상처에 불을 더 활활 지필 수 있는 종류의 여자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상처를 불살라 줄 수 있는 여자는...... "맥 라이언이 한 역할에는 베아트리체스 달정도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아니, 네가 딱 적역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답 대신에 난 그녀의 눈을 용기를 내어 바라보았다. 만나는 내내, 그녀의 시선을 이렇게 또렷이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눈은 아름다웠다. 그 눈동자 위에 얹혀진 내 모습이 또렸이 보일 정도로, 윤기가 흐르고, 이국적이라 불리울만치 연한 갈색을 띄고 있는 눈이었다. 그 눈의 안 쪽에 불길한 느낌이란 전혀 없었다. "난, 잘은 모르겠지만, 너를 통해서 치유받고 있는 기분이 들어" 어느샌가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갑작스레 과거가 떠올라왔다. 정상적인 인간, 모범적인 학생, 그리고 벗어남이 없는 성실한 아들로 친척이나 친구로 살아왔던 일상이 몰려 들어왔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난 내가 가진, 일탈의 가능성을 누르느라 어딘가 마모가 되어 왔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자신도 모르게 나를 상처입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를 통해서, 한번도 가공되지 않은 얼음이 담긴 물을 들이키는 듯한 청량감이 내 속으로 몰려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대답대신 자연스러운 포즈로 내게 기대왔다. 발 킬머의 시선이 사라지고, 곧이어 내 시선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숨어린 밀착과 더불어서, 늑골 밑의 두근거림이 온 몸으로 퍼져갔다. "치유하는 사람이 꼭, 정상적일 필요는 없는거 맞지?" "그래서 정상적인 것 이상의 비정상적인 것이 있는거야..." 나는 나의 불완전함이 또한 그녀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 되기를 어느샌가 바라고 있었다. 내가 무엇에 이끌려 그녀를 여기까지 따라왔는지 이제야 조금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늑골 밑으로부터 불이 활활 지펴지고 있었고 그것은 어느새, 이 화려한 공간을 불로 가득히 채우고 있었다. 그 어느날보다도 더운 여름이었다. 4.8 영화매트릭스 # 새벽녘이 밝았을 때쯤에는 두번째 영화매트릭스가 끝나있었다. 그녀가 선사한 마리화나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좀처럼 내 세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나자신에 대한 빨간알약이었던 것일까? 트리니티의 이미지가 놀랍도록, 그녀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놀라고 말았다. 약간 사납게 생긴 눈매와 과격함, 그리고 가날프지만 강렬한 이미지가 그녀에게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난 네오와는 너무 달랐다. 네오는 내가 갈 수 없는 다른 곳에 단 한걸음에 전력질주하여 도달한 인물이었다. 하루하루의 일상적 상황과 보는 영화의 스토리를 인생에 맞추어 넣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나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었다. 네오가 직관적이라면, 나는 인지적인 인물이었고, 네오가 연역적이라면, 나는 귀납적이었다. 네오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물론, 영화관에서는 열광적인 관객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럴수가 없었다. "네오역에는 차라리 발 킬머가 더 어울렸을것 같아, 안그래?" 그녀는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랬다면, 아마도 매트릭스에 도달하는 방법을 접속이 아니라 마약으로 인한 환각으로 하는 게 좋았을 걸"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접속되는 장면을 생각하니까, 좀 웃긴데?" 잠시간의 뜨거운 느낌의 맞닿음이 풀려서, 그녀와 나는 약간 처진 분위기에서 부드러이 서로를 응시했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 매무새가 약간 흐트러졌지만, 한없이 좋은 느낌만이 느껴져왔다. 여전히, 그녀의 작은 몸짓에도 심장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자, 이제 이 좁은 매트릭스에서 나가야지" "네오와 오빠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트리니티는, 아니, 그녀는 목 뒤에서 가벼이 연결장치를 뽑아내기라도 한듯이, 약간 찌푸둥했던 표정을 금새 또렸한 것으로 바꾸면서, 꼿꼿이 일어났다. 화려한 방의 풍경은 문을 닫기도 전에 머리 속에서 사라졌다. 영화라는 공간과 영화를 보았던 공간을 시야에서 지움과 동시에, 우리는 일상으로 가벼이 돌아왔다. 그 일상은 언제나 영화보다 복잡하고 난해하다. 나는 그녀에게 치유라는 단어를 말했다. 하지만, 솔직하게, 내가 이해하는 단어인 '치유'와 의과대생이 이해하는 '치유',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이해하는 '치유', 모델이 되고자 하는 여자가 이해하는 그 단어는 똑같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내가 정의하는 불완전 또는 비정상이라는 말과 그녀가 정의하는 불완전 또는 비정상이라는 말은 그 이해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와 내가 공명하는 어느지점, 그리고, 말을 주고 받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 서로간의 시선과 신체의 접촉을 동반한 커뮤니케이션은 그 이해의 차이를 대폭적으로 줄여놓는다. 지금의 이 경험이 내게 알려주고 있는 것은, 열정과 사랑의 존재였다. "마리화나를 어떻게 생각해?" 그녀가 물었다. "담배보다는 건강에 덜 해롭고, 중독성도 현저히 떨어지지만, 한국에서는 마약으로 분류된 것들 중에 하나이지" "그렇게 생각했던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건데?" "사회를 거부하는 하나의 수단" "20대 초반에도 아직 사회를 거부하는 것은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란 생각 안해봤니?" "아무도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 "그럼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녀의 주변에서 이른바 용기있게 접근하고 있는 남자들의 영상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나는 갑자기 솟아난 질투심으로 머리가 깨지는 듯한 기분을 잠시 느꼈다. "내 비위를 지나치게 맞추느라 마리화나를 과장되게 칭찬하는 남자라든지, 피우는 의미에 대한 과장된 내용들을 이야기 하는 친구들이었지" "마리화나는 특별히 칭찬할 이유도 없고, 피우는 것에 대해서 사회가 요란을 떨며 금지해야할 이유가 없는 것일 수도 있어" "그럼 난 이제 당당하게 마리화나를 여기저기에서 피워도 되는 걸까?" "금지 또는 비난이 과장되거나, 칭찬 또는 허용이 과장되는게 사람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들이란 이야기야, 네가 감방에 가는건 원치 않아" 공인된 마약인 '담배' 한가치에 다시 불을 붙혔다. 이 사회에 있는 사람들 중에 과연 몇이나 자기 자신이 아무것에도 중독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난 담배와 영화, 그리고 내자신이 소심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에 중독되어 있었고, 그녀는 브랜드 제품과 자신이 마약중독자라고 믿는 것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 주위의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중독자라고 부르는 것에 중독되어 있을 것이다. 4.9 장흥 # 그로부터 일주일 후, 다시 그녀의 휴일이 찾아왔다. 하루만에 갔다올 곳을 찾다가 나는 장흥에 다녀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설마 그녀가 그곳에서도 마리화나를 피울 수 있는 장소를 찾을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차를 몰고 나오리라는 것은 미리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경치가 좋은 곳에 가면 한대쯤은 피워도 좋을 것 같아" "마리화나를 맘놓고 피우려고 장만한 차일까?" "장기 할부야, 매끈한 다리를 지키려고 하는 강박관념 때문에 산 거야, 내 기억으로는"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매연을 더 마셔야 하구?" "매연중독자는 없어" "매연중독자가 아닌 사람이 없지" 열린 창을 통해서 신선한 바람이 폐 속으로 몰려들어오면서, 잠시 시니컬해지려 했던 생각이 바뀌었다. 카 스테레오에서 짐 모리슨의 ?RidersOnTheStorm이 흘러나오고,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앨범의 Sailing과 Time이 흘렀다. 잠깐 들었던 라디오 뉴스에서는 이라크에서 매일 한명 이상의 미군이 죽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한달에 36명씩의 자살자가 생기고 있다는 기사가 짤막하게 들려왔다. "은지야......난, 때때로 누가 이 세상을 나쁘게 만들고 있는지 전혀 모르게 될 때가 있어" "누가 좋게 만드는지는 알고 있어?"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들이지" "공산주의야?" "맘에 안들어? 그럼 묵묵히 자기 일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야되나?" "신자유주의인가?" "조금 다른 이야기야." "답이 뭔데?" "정답은 세상을 나쁘게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야" "그건 좋게 만드는게 아니라 좋게 보이게 하는 사람들일뿐이잖아" "세상은 탐욕이 강한 사람들때문에 나빠져가고 있는거야, 그걸 전혀 눈치 못채게 하는 것 이상의 선행이 있다고 생각해?" "어쩌면 모델도 그런 사람들중에 하나겠구나" "영화볼링포콜럼바인의 마이클 무어보다, 나오미 캠벨이 더 선행을 많이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 난 모델계의 테레사 수녀가 되고싶어" 그녀의 말들이 때로는 이 세상 사람들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올 때가 있다. 자신을 특별하다고 채색하는 것을 즐기는게 너무 지나쳐버린 것은 아닐까 싶었어도, 그 말과 목소리 너머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난 더이상의 설득을 할 수가 없었다. '보기 좋은 아름다운 것은 그 못된 면을 설득해서 그 자체를 바꾸어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녀는 장흥 주변에 펼쳐진 자연속에 있는 곤충들이나 나비, 잡초나 꽃, 제멋대로 자란 수목류처럼, 그냥 내버려두고 옆에서 쳐다 보고 있어야, 비로서 프레쉬한 공기와 풍경을 선사해주는 그런 존재였다. 나는 결국엔, 빠르게 그녀를 치유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하였다. 자연을 바꾸는 법은 다듬고 쳐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조금 다르게 자라나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쉽게 무력함을 느껴서 뒤로 물러나는 나의 성격때문에 결국 그녀같은 여자에게는 최상의 파트너가 된다는 생각에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해졌다. 눈 앞에 단 한송이라도 아름다운 꽃이 있다는 것은 잔인한 세계에 대한 웅장한 축복이다. "배고파 죽겠어" "응...?" "빨리 뛰어가서 오뎅이랑, 햄버거 좀 사와" 멈추지 않고 이것저것 먹고 있는 그녀를 보다가 좀 전에 생각을 조금 바꾸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눈 앞에 단 한마리라도 귀여운 돼지가 있다는 것은 허기진 세계에 대한 푸짐한 축복이다. (Roman이 쓰고, 헌터D씨와, 까르페디엠씨의 +수정, Non-fiction.) [헌터D씨의 개인 위키 http://ost25.cafe24.com/ 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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