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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1월 02일
4.10 남이섬 #
그 다음 주의 휴일에도 우리는 만났다. 이번에는 차와 핸드백같은 것 하나 없이, 나를 따라나선 그녀의 모습에 다시금 놀랐다. 나시티와 정강이까지 오는 바지, 그리고, 작은 지갑과 운동화가 그녀가 달고나온 전부였다. 심플함이 지나쳐서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제껏 그렇게까지 간편한 옷차림으로 나왔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대비감에 눈이 부시기까지 했다. "오늘은 굶고 싶어" "마리화나는 전혀 피우지 않을 작정이로군" "아니" "그럼 굶을 수 있을까?" "정 못참게 되면 너를 잡아먹을거야" 남이섬으로 떠나기로 한 것은 그곳이 이전에 다니던 고등학교의 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곳이라서, 이른바 연줄이 좀 닿는 덕에 몇가지 편의를 손쉽게 제공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생 때 모범생이었던 덕에, 재단 이사장은 나와 나름의 친분이 있었다. 방가로와 보트, 제트 스키를 무료로 사용하고, 그날 벌어지는 방송 촬영 때는 연예인들의 대기석 가까이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곳에서 눈을 반짝이며 동요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저 무대 위에 서있는게 나였으면 좋겠어" "얼마 안 있어 서 있을거야" "옆에 다른 남자들 없이, 너만 있었으면 좋겠고" "떨어지는 시청률은 무엇으로 감당해야할까?" "당당하게 마리화나를 피워서 모두를 놀래켜주고 싶군" "1면 톱기사를 장식하고 싶은게로군" "당당하게 톱모델인 박모양이 생방송 무대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다?" "아니, 마리화나를 피운 뒤에 남자친구로 허기를 채우다..." 어깨에 자연스레이 손을 올리고, 여느 연인들과 다름없이 길을 걸었다. 조랑말을 같이 탔을 때, 그녀와 닿는 느낌이 다시금 더운 여름날을 뜨겁게 만들어주었다. 그녀의 눈이 반갑다는 듯이, 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섬의 주변부를 바라볼 때, 나는 이 섬에 우리만 단 둘이 말을 타고 살고 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소망했다. 아름다운 영상이었지만, 곧이어 그녀가 허기짐에 못 이겨, 내 목을 물어뜯는 장면이 떠올랐다. -------------------------------------------------------------------------------- 어둠이 강물로부터 서서히 섬위에 스며들어왔다. 그리고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수영을 하기로 했다. 방갈로 안에 들어와서, 사랑스러운 그녀의 몇개 되지 않는 옷을 차분히 접어서 옆에 치워두었다. 마리화나가 들어 있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도 차분히 옷을 벗어 그옆에 쌓았다. 트렁크마저 벗어내렸을 때, 밖에서는 밤벌레들의 소리가 일제히 울려퍼져왔다. 수영복을 입고 밖에 나와보니, 말끔히 비키니로 갈아입은 그녀가 수영장 옆에 앉아 풀숲을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벌레들이 야유라도 하는 것 같아" "무엇에 대해서?" "여름이 충분히 뜨겁지 않은 것에 대해서" "비가 많이 와서일꺼야, 충분히 덥지 않다면" "난 비를 너무 많이 맞은 것 같아" "언제 그렇게 맞았는데?" "오늘 내내, 너의 마음이 비가 되어 내려왔어" 그녀를 안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강물에 뛰어들면서, 밤벌레들의 합창이 사라지고 물소리만이 귀를 가득히 매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밤 속에서 그녀의 얇고 가느다란 팔이 나를 꼭 붙들어 안고, 어느새 사라진 세상 사람들을 모두 어둠에 묻고 오로지 우리둘만이 남아 있는 느낌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손톱을 살짜기 세워 나의 등을 긁었고, 단단하고 가지런한 이빨로 귓볼을 살짝 물어주었다. 순간, 어둠보다 더 깊은 곳으로 순식간에 빨려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우린 집에 가지 않는거지?" 이제는 머뭇거리며 묻지 않는다. "우리 둘 다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어" -------------------------------------------------------------------------------- 잠시후, 기진맥진해진 상태로 잠을 자다가 왠지 모를 차가운 느낌에 두눈이 번쩍 뜨였다. 방갈로 안은 어두웠다. 어둠 속에서 갖가지의 영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둠의 저 구석에서, 하얀 연기가 휘날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빨간 조명이 잠시 생겼다 가라 앉으면, 다시, 그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랐다. 담배연기가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에 마리화나가 있었을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네가 아는 은지가 아니야..." 대답해야 하는 소리였을까? "...나는 네가 아는 은지가 아니라구..." 나는 분명히 잠에 들어 있는 상태여야만 했다. 그건 혼자소리였지, 내가 대답해야할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흐느낌이었고, 그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음인 그 진동의 방향이 저 먼 지하로 향해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너를 갖고 싶어..." 소름이 쫙 일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가져서도 안되고, 가질 수도 없어..." 무엇인가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가위라도 눌린듯이 온 몸 구석의 어느 부분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내몸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을 씻어내리기 전엔, 나도 너의 것이 될 수 없고, 너도 나의 것이 될 수 없어..." '내가 씻어내려줄께, 내가 치유해줄꺼야' 고함을 외치고 있었지만, 그것은 소리로 변하지 않았다. 다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눈물이 가득히 귀와 볼을 타고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금 초라하게 소심해진 원래의 나로 하염없이 추락하고 있었고, 모든 영상은 갑작스레 하나로 뭉치며 눈 앞에서 점멸하다 사라져갔다. 4.11 행방불명 # 남이섬에 들어갈 때는 둘이었지만, 나올 때에는 혼자 나왔다. 그녀가 밤새 정말로 사라져 버린 것을 제대로 확인한 것은 아침이 되어서였다. 핸드폰은 이미, 번호가 다른 사람의 번호로 바뀌어 있었고, 그녀가 다닌다는 학교의 학과 사이트에 가서 조회해봐도 그녀의 이름을 가진 여자는 단지 동명이인일뿐, 그녀가 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는 증거는 단 한가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갖은 상상이 머리를 괴롭혔다. 난 그 때 일어나서 그녀가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꿈속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지몽을 꾸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그녀는 혹시 자살할 준비를 하고왔던 것이었을까? 그래서 그렇게 간단한 복장으로 왔던걸까? 방갈로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온전히 남아 있던 것은 오로지, 내가 가지고 들어온 것들 뿐이었다. 대학로를 뒤져서 내가 그녀와 함께 들렸다고 생각했던 70년대 식당을 찾으려했지만, 그 어느 골목에서도 비슷한 곳 하나 발견할 수가 없었다. 스파게티 전문점은 그대로 있었지만, 종업원들에게 아무리 물어봐도 그날밤 우리가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디오방을 십수군데를 찾아가보았지만, 그녀와 왔었다고 생각되는 비디오방은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수입품 코너를 갖고 있는 서울시의 이름있는 백화점과 쇼핑센터를 헤매어 다녔지만, 박은지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든, 모델학과 휴학생이든 비슷한 여자를 고용했다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도어스 카페를 샅샅이 뒤지며, 그녀가 남겼을만한 흔적을 발견해보려했지만, 그녀는 그곳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마치, 이전부터 오지도 않았던 듯이, 사람들은 단 한달만에 그녀에 대한 기억을 거의 망각하고 있었다. 홍대앞의 그 클럽에서도 그녀와 연결될만한 고리는 전혀 나타나질 않았고, 그제서야, 70년대의 기계식 전화기가 2000년대의 핸드폰보다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를 다시금 깨달을 수가 있었다. 내게 그녀를 다시 찾아낼 수 있는 출구는 단 한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민들레 홀씨였고, 이름모를 밤의 벌레였다, 그저 쳐다보는 것만이 허용될뿐 같이 오래 있는다는 것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여자였을 것이다. 다시, 앞 뒤 꽉막히고 소심하기 이를데 없는 원래의 나로 돌아와서, 난 도어스 영화 카페에 들려 멍하니 영화만 쳐다보는 사람으로 전락하였다. 그렇게 답답하고 찜통처럼 앞 뒤가 꽉 막힌 여름이 점점 흘러가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모습에 친구들과 가족들이 걱정을 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부로 들어오지 않았다. 여름의 막바지. 검은 밤의 한가운데 나는 진공상태의 드럼통같이 흉하게 모습이 변해가고 있었다. (Roman이 쓰고, 헌터D씨와, 까르페디엠씨의 +수정, Non-fiction.) [헌터D씨의 개인 위키 http://ost25.cafe24.com/ 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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