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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1월 08일
1. 진의 Test
HH 테스트 레이저가 벽에 닿는 순간 어김없이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채 흙먼지가 가라앉기 전에 무너진 벽에 기대서서 숨을 고르던 진은 셋을 센 다음 벽을 따라 뛰어나갔다. 테스트용 레이저의 궤적은 표적을 쫓는 사냥개마냥 진의 뒤를 따라간다. "이런........ 저게 테스트용 레이저야? 벽이 팍팍 패인 걸 보니 맞으면 뼈가 남아나질 안겠네. H평가 피하려고 1년간 별짓을 다 했는데 또 H평가야. 제길...” 이번 테스트는 연합국 메인프레임 입출력자들이 1년에 한번 보는 정기 테스트였다. 모든 입출력자들은 개인별로 부족하다고 평가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재테스트 해서 실력 미달자들을 분류해 낸다. 지난 3년간 사전평가에서 매번 진은 체력 부분이 부족하다고 평가되었고 그 때문에 H평가를 받게 되었다. 평가용으로 사용되는 레이저는 원래 강도가 많이 약화된 것인데 H-Highest(Double High) 평가라서인지 그 강도가 콘크리트 벽에 상당한 흠집을 낼 정도였다. 진은 그동안 H 평가를 피해 보려고 체력단련에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그런데 정작 열심히 한 체력단련과는 상관없이 통찰력과 수리력, 프로그래밍 시험, 언어영역의 성적이 사전평가에서 만점이 나오는 바람에 체력과는 상관없이 H 평가로 지정되었고 체력점수도 높아져 있어서 레벨은 자연히 Highest가 되었다. 그 결과 진은 홀로 테스트용 레이저가 난무하는 파괴된 구 도시에 떨어졌다. 게다가 200M의 길을 뚫고 나가 콘솔로 메인프레임에 접속해서 오류를 수정해야 했다. 모든 테스트는 3차시기까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것으로 마지막 3차 시기에서마저 실패하면 입출력자로서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진은 구르고 숨고 달리기를 반복해서 180M 가량을 군데군데 무너져 있는 건물 외벽에 기대어 통과했다. 이제 지난 2번째의 시험에서 레이저에 맞아 거품을 물고 쓰러졌던 바로 그 4차선 도로를 지나 전면에 위치한 건물 지하3층으로 진입해야했다. 테스트용 레이저를 피하기 가장 어려운 곳인 도로를 어떻게 통과하는 것이 좋을지 잠시 생각했다. ‘센서 교란으로는 4차선 도로 중에 일차선도 못 지난다는 걸 작년에 뼈저리게 확인했으니 ....... 최대한 사각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수밖에....... 레이저장치가 4층과 5층에 있는 것 같으니까 건물에 가까이 접근하면 자동조준이 불가능할거야 아마도.......꿀꺽‘ 진은 침을 삼키며 혼잣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도로위에 완전히 부서져서 외형만 남아있는 자동차를 엄폐물 삼아 전진하기 위해 조그만 돌을 몇 개 주워 정면의 도로 쪽으로 확 뿌리고선 자동차를 향해 뛰었다. “헉.......“ 재빨리 뛰어 다가선다는 것이 그만 바닥에 깨져 있던 바닥의 블럭에 걸려 넘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진이 넘어진 빈 공간으로는 레이저가 좌, 우에서 한 번씩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허공을 지나쳤고 진은 재빨리 몸을 굴려 간신히 자동차 쪽으로 몸을 옮길 수 있었다. “에구에구. 겨우 옆 몇 걸음 옮기는 데 탈락 위기라니........ 이정도 레이저 강도라면 급소를 잘못 맞으면 죽을 수도 있겠는데........Double High의 악명이 소문만은 아니었군...... 포기해버릴까?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이런 일에 목숨 걸 필요는 없잖아.......쩝" 입맛만 다시다가 돌멩이로는 센서를 속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보니 자동차 바퀴가 눈에 뜨였다. 그래 이거라면....... 연장이 필요할까 걱정하며 힘주어 당기니 '턱'하는 소리와 함께 그냥 떨어져 나왔다. 자동차의 옆으로 살짝 밀어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센서가 반응하며 바퀴를 두들겼다. '역시 크기 때문이었군. 그래 이거라면 건물 입구까지 센서를 속일 수 있을지도 몰라.' 자동차를 살펴보니 바퀴가 하나 더 남아있었다. 마저 떼어낸 다음 두개를 일제히 다른 방향으로 굴린 다음 최대한 몸을 숙이고 전력으로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싫은 소리를 내는 레이저는 바퀴를 말 그대로 뭉게고 있었고 그 잠깐 사이 건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건물 안에는 다행히 다른 대인공격용 장치들이 없어서 비상계단을 통해서 지하로 내려갈 수 있었다. 메인프레임의 콘솔을 조작하기 위해 전원을 켰다. 테스트를 위해 미리 점검해 두었는지 모니터와 네트워크 연결 상태는 깨끗했다. 네트워크로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에 접속해서 미리 만들어둔 해킹 툴을 다운 받았다. 256*256 bit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손으로 암호 입력해보고 있어서야 지구가 쪼개져도 끝날 리 없으니 프로그램을 써야했다. 프로그램을 돌리고 난 뒤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운이 따라서 시작한지 10분 만에 첫 번째 암호를 알아낼 수 있었고 각기 다른 프로그램으로 비슷한 작업을 몇 번 더 하고 나니 3중으로 막혀있던 방화벽을 뚫고 루트 권한을 획득했다. 오류를 점검하던 중에 불필요한 코드가 있는 것이 보였다. 악성 바이러스 종류는 아닌데 메인프레임의 메모리에 상주하며 주기적으로 사용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프로그램이었다. 'Where is the Truth?'라는....... 오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코드를 지우고 다른 오류들을 잡아나갔다. 그 과정에서 진은 메인프레임의 입출력의 과정을 잠시 스캔 할 수가 있었다. 일단, 이 정보는 스캔 상태로 대뇌의 잠재의식 속에 저장해서, 다시 차후에 분석하여 보기로 하고, 진은 훈련 기간 동안 자신이 습득한 기억 차폐능력으로 날 것 그대로의 정보를 깊숙이 내부에 저장하였다. [오르페우스]의 귀환 다중포인터부분의 오류를 끝으로 전체 코드를 다시 보고 있으려니 진실은 어디 있냐고 물어보는 코드가 다시 생성되어 있는 게 아닌가? 사실 메인프레임같이 처리능력이 엄청난 수준에서는 이런 작은 부분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아무도 체감할 수 없다. 그래서 그냥 두려하다가 슬며시 호기심이 동해서 다시 지우고 조금 후 확인해 봤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생성되어 있었다. 확인해보니 어디에선가 외부에서 이 코드를 30초 주기로 확인하고 삭제되었을 때마다 복구하고 있었다. '이거 뭐야 누가 이런 쓸데없는 장난치는 거야? 이 메인프레임은 단말기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으니 네트워크로 누가 장난치나 본데. 테스트 중이라 귀찮으니 한 번 봐준다. 운 좋은 줄 알게. 이름모를 해커........' 깍지를 꼈다가 손가락을 풀면서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모니터에 'Where is the Truth?'라는 텍스트가 찍혀 나왔다. 진은 그냥 일어나려다가 학창시절 케인즈 교수로부터 지나가듯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음 가볍게 몇 자를 치고 엔터를 치는 순간 갑자기 화면이 바뀌면서 수소연료 폭파경고를 알리는 알람이 들어왔다. 사이렌 소리가 건물 내부를 뒤흔들었다. 입출력자 교육과정에 있던 수소연료 폭발 시 대처방법은, 직접 방사되는 강한 광선과 폭발 후 생성되는 독성의 가스를 피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 도시에서 광선과 가스를 피하기 위해서는 아스팔트재질로 둘러싸인 지하실 같은 곳에서 자신을 가사 상태에 가까운 무호흡의 상태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진은 건물밖으로 있는 힘껏 뛰어나가면서 소리질렀다. "빌어먹을........ 뭣하러, 이런 단계까지 꼭 이 시험에 있어야 되는 거지?" 책에 적혀있던 내용과 현실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도로의 어느 곳에서도, 움푹 파인 골 같은 것은 없었다. 레이저가 벽을 움푹 파고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약 5분간 한 곳으로 주변에서 진을 노리는 총구들의 방향을 한 곳으로 몰아보았다. 사방팔방을 뛰어다니며 불규칙한 달리기를 계속했다. 진이 달려드는 곳은 인도와 도로의 사이 한 곳이었다. 약 일곱 번 정도 레이저가 한곳을 사격하는 동안 아스팔트 바닥 사이의 하수구 통로가 무너지면서, 그럴 듯한 갱도가 생겼다. 2km, 하나의 연료관이 터지면서, 연쇄반응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그 화력의 범위는 2km에 미친다. 그 생각에 집중하면서, 혹시, 마지막으로 사브리나를 한 번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갱도에 몸을 날리면서, 매뉴얼대로 신체를 가사 상태로 몰아가는 호흡을 하였다. 요가의 대가 정도나 성공한다는 가사 상태에 빠져드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순간 폭파의 파장이 의식이 최후로 머무는 저 끄트머리에서 느껴져왔다. 그리고 잠시 후........ 환영이라도 보게 된 것처럼, 검은 공간의 저편에서 다가온 누군가의 눈과 마주쳤다. '내가 죽은 거야? 여긴 천국쯤 되는 건가?' 그는 약간 튀어나온 훤칠히 벗겨진 이마의 소유자였다. 자세히 눈을 들여다보니 한없이 깊은 눈동자가 지긋이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가 정확히 언어로 이해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진은 곧 깨달았다. |}} <믿을 수 없는 일을 지금 당신은 해내고 말았어. '우리'중 누군가도 하지 못한 일을 말이야.> <당신은 뭔데 이곳에 있지? 누구야, 이 대머리 아저씨.> <메인프레임의 숨은 소스를 읽어봐, 네가 봉인한> <텔레파시........수소연료........진화........당신이 그들 중에 하나인가?> 낯선 공간에서, 대답 없는 낯선 인물과 약 5분여간 대면하고 있는 순간이 지나고 몽롱해지면서 정말로 의식을 잃은 진은 잠시 후에 의식을 찾았다. 자신이 한번도 해보지 못한 유체이탈과도 같은 가사수면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통과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온몸에 싸그리 사라진 도로의 잔해를 모두 뒤집어 쓴 채로 일어난 진은 어디선가 듣고 있을 관리자를 호출하는 신호를 했다. "이것 봐 지옥에서 돌아온 [오르페우스]를 받아줘 빨리! 마누라가 없어져서 화났다고!" 커보키언의 [바이오메카트로닉스]장치 공중에서 모니터가 달린 비행체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모니터의 화면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진. 축하합니다. H단계 Highest 단계를 통과한 최초의 인류가 되었군요.” “고마워요. 최초라니 기쁘군요. 그런데 당신은 누구죠? 테스트가 끝나면 그냥 출구로 안내하는 거 아닌가요?” 진은 옷에 먼지를 털어내며 물었다. “글쎄요? 먼저 인사부터 하죠. 커보키언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진은 어께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저도 반가워요. 그런데 지금 솔직히 너무 피곤해서요. 얼른 출구 방향이나 알려주실래요?” 화면 속의 그 남자는 연구원인지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고 가운의 왼쪽 가슴에 포켓에는 필기구 몇 개가 꽂혀 있었다. 그는 뭐가 그리 좋은 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피곤한 건 당연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테스트의 일부라고 생각하시고 조금만 대화에 시간을 내주면 좋겠네요.” “뭐라고요?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전 지금 완전히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에요. 제가 받은 문제는 분명히 구형 단말기로 메인프레임에 접속해서 오류 수정하는 거 까지였는데요?” “마지막에 추가된 임무라고 해두죠. 일단 이 비행체가 안내하는 쪽으로 가면 휴식을 취할 공간이 있으니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미션을 끝내도록 하죠. 그럼 한 시간 후에 내가 당신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당신은 그냥 그 곳에서 기다리면 됩니다. 먼지나 땀 때문에 불쾌하다면 방안에 샤워시설이 있으니 샤워나 하면서 기다리면 될 것 같네요. 단지 그 공간을 떠나지 말고 잠시 대기하면서 다음 미션을 기다리세요.” 화면속의 인물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면은 꺼졌다. 진은 뭐라 대꾸할 기회를 놓쳤지만 낙천적인 성격인 진은 일단 샤워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 때문에 말없이 따라나섰다. 제법 구형으로 보이는 비행체가 안내한 방 안에는 옷걸이와 소파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소파 위에는 갈아입을 속옷과 세면도구가 있었고 옷걸이에는 편해 보이는 옷가지가 있었다. 유리재질의 반투명의 샤워 룸으로 들어간 진은 옷을 벗어 던지고 샤워기를 틀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좀 씻고 보자.) ......... 샤워를 끝낸 후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으려니 화면으로 보았던 커보키언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아까 인사드렸죠? 저는 테스트 담당의사인 커보키언입니다. 수소연료 폭파과정을 겪었으니 당신 신체에 손상이나 변이가 생겼을지 몰라요. 당신의 신체 상태를 스캔하고 정상상태임을 확인한 후라야 당신은 정상으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그 과정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서 변이나 장애를 겪을 확률이 5%도 안 되니까요." "아무리 실전테스트라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Double High라고 그래도 그렇지 수소연료 폭파라니요?" 진은 약간 성마른 목소리로 따졌다. "사실 수소연료 폭파과정은 의외의 경우였습니다. 마지막 물리적 테스트는 다른 것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수소폭발이 일어났습니다. Double High 테스트의 경우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어서 최종점검에서 아무래도 오류가 생겼던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그럼 그 오류 때문에 죽었어야할 목숨이 운 좋게도 살아 돌아왔다는 거요?" “물론 아니죠. 그냥 그 때 있었던 사실만 이야기 한 겁니다.” 커보키언은 평평한 바닥의 블록들을 일제히 걷어내고 진의 앞에서 잠수함의 잠망경처럼 솟아오르는 커다란 원통을 가리켰다. "규칙상 일단 6개월 전까지 사용되던 구형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일반 병원 프로그램보다는 신뢰성이 떨어지더라도 수소연료 폭파과정 데이타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장비라서요. 사실 이걸 구하느라 시간이 좀 걸린 거죠." "이건 일반 병원에서 요즘 사용하는 것들과 비교해서 좀 덩치가 큰 스캐너군요. 1개월 전의 모델로 해도 기분이 나쁠 판인데, 6개월 전의 구형이라면, 누가 신뢰하고 스캔을 받겠어요? " 이미 기분이 상해버린 진은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일단, 현재, 신형 스캐너에 수소연료 폭파과정 데이타를 입력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구형으로 스캔하는 것이 더 시간이 적게 걸려 이 방법을 씁니다만 15일 뒤에 신형 스캐너로 재 스캔 해드리죠." 툴툴거리며 스캐너 안에 들어간 진은 매끄럽게 피부를 지나쳐가는 파동을 느끼면서도 계속 커보키언을 약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수소 연료에 의해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보고서는 지금으로부터 28년전인 SPTS(Space Protocol Time Standard)675년 이후로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수소 연료에 의한 임상 실험 결과를 가진 사람들의 정보가 정확히 메모리로 남아 있도록 프로그래밍된 스캐너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신형을 써도 올바른 스캔은 정확한 변이나 바이러스 등에 대해서 사용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 때 스캐너의 외측 몸통 면에서 진이 눈치 못 챌 Warning 신호가 커보키언의 눈앞에 떠올랐다. Top Secret 라는 글자와 더불어서 외측면의 스캐너 스크린은 온통 검은색으로 덮혀들었다. 커보키언은 수차례의 의과대에서의 훈련에서처럼, 스크린에 나타난 상태를 자신의 얼굴에 떠오르지 않도록, 안면 근육을 고정시키는 기능을 약지로 손바닥을 눌러 작동시켰다. 동시에 눈물샘과 땀샘이 순간 차단되었고, 심장의 평소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체내의 조정장치가 작동했다. 시신경 뒤의 인공 뉴런이 눈동자의 움직임과 동공의 움직임을 컨트롤했고 망막이 스크린을 벗어난 진의 이마 쪽의 영상을 보도록 시선의 각도가 변경되었다. '이자의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군' 진은 바로 알아차렸다. 커보키언이 일면 도발적인 진의 언어 구사에 대해서 전혀 반응이 없는 것은 분명히 [바이오메카트로닉스]기술이 사용되었기 때문이었다. 냉소적이고 거친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진은 이런 종류의 인간들을 항상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그런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작동시킨 커보디언의 장치는 관찰력이 유달리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눈치 채기 쉬운 힌트를 남기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단순히 기분이 나빠서?' 커보키언의 탐색 "이상이 전혀 없습니다. 데이타를 보면 사람이 몸까지 이렇게 완벽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군요. 수치로 표현하자면, 20억 분의 1의 확률에 달하는 것입니다. 오류수정시스템의 전뇌(電腦)를 담당하는 케언즈 교수를 제외하고서는 육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루면서 이렇게까지 뛰어난 사람은 없었어요. 커보키언의 표정은 아까의 침착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과장된 경탄과 감동을 눈빛과 시선, 반짝이는 눈, 그리고 피부 근육의 떨림과 제스처. 진은 거북하다는 듯이 원통의 벽을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이 원통이나 치우고 천천히 이야기 하면 안 될까요? 서커스단이라는 곳의 피에로처럼 발사대에 쑤셔 넣어진 기분이라구요.“ 그제서야 데이터가 나와 있는 화면에서 눈을 뗀 커보키언은 스캐너를 종료시키는 버튼을 눌렀다. "당신은 초월명상이나 수도, 수련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있었던 것 같군요." "메뉴얼을 충실히 입력하고 몸의 동작과 연계된 신체 반응에 적절히 집중시켰을 따름이지, 그런 것을 따로 배웠던 적은 전혀 없어요." "그럼, 어떻게 '마하무드라'의 경지에 단 10초만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거죠?" "'마하무드라'라니?" 진은 원통이 바닥 밑으로 꺼져감과 동시에 대기 속으로 완전히 자신의 몸을 노출시켰다. 약간 마른 듯한 몸매가 드러나자마자 형체 복원의 나노 섬유의상이 다시 진을 약 10여초 만에 감쌌다. 진은 알파 트레커의 키워드를 어금니를 세 번 깨물어서 작동시켰다. 그리고 입가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건, 성적인 교합 상태에서 남녀가 느끼는 최절정기에도 닿을 수 있다고 하는 인도밀교의 한 경지를 말하는 거잖아요?" "당신은 그 경지에 단 10초 만에, 단지 의지만으로 가 닿았습니다. 그리고 메뉴얼만으로 그 경지에 닿는 사람은 고문헌에 기록된 사람들 이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내부에 장치된 알파 트래커같은 장치로 아무리 찾아봐도 비슷한 사람은 신화 속에서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진은 커보키언의 표정을 살피다가 말했다. "독심술 같은 건 아니지만 지금 당신을 보고서 당신은 마하무드라를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왜 그러는 거죠?" 이번에는 아까의 장치가 작동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커보키언의 표정은 눈에 띄게 새하얗게 변했다. "당신은 텔레파시가 되는 인간들 중에 하나가 된 게 아닌가 싶군요."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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