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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3월 20일
여기는 방글라데시로 나를 장기 출장 보내려고 했던 회사의 사무실이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분명히 이 회사의 급여를 받고 있는 직장인이며, 동시에 이 회사의 집기를 사용하고 있고, 커피도 뽑아 마시고, 종이도 인쇄출력하고 있는 멀쩡한 이 회사의 직원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그 상황이 바뀌는 데에는 한달의 시간만이 필요했었을 뿐이다.
마치, 매트릭스 2에서 네오가 마지막 장면에서 현실 속의 센티넬들에게도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기능을 정지시키고 경이감에 놀라서 외치는 혼잣말과도 같은 말을 나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뭔가가 바뀌어졌어...... 방글라데시로 가는 것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 인프라도 제대로 안 서있고, 소비문화가 아직 융성하지 못하였으며, 극단적인 빈부 격차 속에서 그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삼시 세끼, 회사 밥 얻어 먹으면서, 세탁을 비롯한 주식 생활 모두를 일괄적으로 회사에서 해결해주는 시스템은 나같이 어설프게나마 글장이를 꿈꾸어왔고, 아직도 꿈꾸어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천혜의 기회였으며, 동시에, 방글라데시에서는 받는 급여의 100%가까이 그대로, 저축,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니, 이 이상은 어쩌면 더 바랄 나위가 없었다. 다만, 이 회사의 조직 체계는 몸서리치게 나자신이 싫어하는 바로 다름아닌, '군대적인 위계 서열', '하면된다'로 똘똘 뭉친 노동강도 우선의 사고와 위에서 내린 말에 일체의 거부가 없는 일괄복종 시스템이었다는 것이, 그런 기회가 보장되어도 내내 스트레스 받고, 이직을 꿈꾸는 원동력이 된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물론, 좀 전에 사람들이 그토록 욕하는 신문인 조선일보의 일부 기사를 본 순간, 내 선택이 과연 올바르기는 한 것인지, 의구심은 들었다. 신빈곤층의 등장이라는 제목을 달고, 일종의 고액 연봉자들의 대열에 끼여 있었던, KT의 직원들이 명퇴 이후에는 일정수준의 급여도 받기도 힘든 계층으로 전락하였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아무리 고액의 연봉을 받아도, 결국 퇴직 이후에는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이미 한국에는 도래해 있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급여 생활자로서의 삶은, 저축과 투자, 이 두가지의 반복으로 퇴직 이후의 현실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공식을 가지고 있다. 철저한 사고와 절제력, 자기 계발의 연속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삶인 것이다. 방글라데시는 그런 현실에서 일면 간단하고, 답이 명확히 서있는 선택일 수 있었다. 다소 답답한 세계라도, 머물러 있는 동안, 조금씩은 비참한 미래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은행 잔고 또는 투자 자금을 통한 소득의 증가는 한국에서 일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보다 빨리 늘어날 수 있을 것이었으니. 아마도, 퇴직 이후까지 생각해보자면, 방글라데시가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방글라데시에 거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한국에서의 디지털과 초속을 다투는 시간 경쟁에서 '한걸음 더' 천천히 걸으면서 그럼에도 경쟁에 거하는 것보다는 한발자국 앞서 안전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방글라데시로 가기 직전에 헤드헌터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섬유업계에서 꽤 유명한 회사 하나에 면접을 볼 일이 생겼는데, 갈 생각이 없는가라는 것이었다. 도합 세명이 오는데, 그 중 둘은 해외 지사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면접을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이 회사까지 오는 상황이고, 나는 한국에서 바로 그 회사로 면접을 보러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수많은 이력서들을 일일이 체크하기 보다는 헤드헌터를 통해서 정예화된 일부만을 만나고, 이 중에서 합격자를 추리려고 한 그 회사의 선택이 그 헤드헌터를 가동시켰고, 그의 데이터 베이스 안에 있던 내 정보가 헤드헌터로 하여금 나를 호출토록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The One 같은 존재는 아니다. 살면서, The One이 될 수 있는 자질이 내게 있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부터 언뜻 되지 않아왔다. 어찌되었든, 그 당시에 이 회사의 부장은 나의 장기 근무를 요청하고 있었고,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으니까. 면접은 보던 말던 나의 삶의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다소 몸이 불편했던 탓에, 내과에 가서 몇번 링겔을 맞을 기회가 생겼었다. 그리고 총 세번의 링겔 꽃는 시간 중에 한번은 면접에 할애할 수 있었다. 이게 참으로 재미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마치 한국 야구팀이 대 일본전과 미국전에서 승승 장구했던 이유가 마치 여기에 다 들어 있는 것만 같다. 면접을 보는 그 날, 나의 복장은 그냥 지금의 회사에서 입던대로, 면바지, 두꺼운 남방, 약간 후줄근한 마이 한벌, 오래신은 구두 하나 정도였다. 면접 내담자들도 이러한 복장에 맞추듯 상당히 내추럴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마음이 조금씩 더 편해왔던 것은 그들이 동년배라는 것이었다. 아니, 차이가 나도 별로 날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여러가지 퍼포먼스가 시작되었다. 1. 나는 영어를 외국 나가서 배웠던 적이 전혀 없다라고 말했지만, 정작 그들이 하는 영어 질문에 대해서 나름대로 능숙하게 답변을 할 수 있었다. 2. 춤추는 것이 취미라고 말했다. 가끔 클럽에 가서 흔든다라고 하니, 그들은 이를 매우 젊고도 신선한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3. 소설을 쓰는 것도 취미라고 말했다, 무슨 소설을 쓰느냐고 묻길래, 사양산업에 처한 국내출판업계가 성공하는 모습을 그리는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들의 약점인 수익성 감소를 찔러대었다. 4. 직장을 옮기면서 왜 다루고 있던 업체들을 빼돌려서 개인 사업같은 것을 하지 않았냐고 묻길래, 삶의 Policy가 남에게 피해를 안주는 것이며, 고객이 아무래도 다른 시스템 하에서 제작한 제품을 공급받기 시작하면 피해를 볼 것 같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외에 나름대로의 견고한 수비와 공격이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완전하게 검증된 승리자로서 나의 성공적인 이력을 방어하는 챔피언이 아니라, 도전자고, 갖고 있는 약점들을 넘어서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 도전이 실패해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편안하였고, 부담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면접은 유감스럽게도 1차의 면접이었다. 그리고, 한달여간의 방글라데시 출장. 마지막 질문은 그러니까. 출장 기간 중에 다시 와서 2차 면접 보지 않겠나였다.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현재 다니는 회사에 폐를 끼치는 일이니까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이게 최선의 적시타였다는 사실은 결국, 그 직장에 고용되게 되었다는 결과가 말해준다. 그 회사는 나를 1개월 동안 기다려주었다. 세계적인 Multinational company로서, 내 경력상 가장 큰 기회가 될 그 회사가 그렇게 나를 추켜세우고 기다렸다. 1. 성공적인 수완. 2. 창조력. 3. 다양한 경험. 4. 안정적인 업무 수행의 가능성. 5. 확고한 윤리적인 가치가 몸에 배인 사람. 으로 나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나머지의 면접자들이 분명히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고, 보다 절실한 이직의 이유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지금와서야 든다. 그들은 자비로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서 한국까지 면접을 보러왔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나와같은 여유나 부담을 일소한 한번 해보자라는 자신만만함이 결여되어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지사 파견 근무자로서의 가장 중요한 도덕적 룰인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을 외면하였다. 출장에서 돌아와서 본 2차의 면접에서 나는 많은 실수를 하였다. 물론, 나이가 훨씬 많고 경력이 대단한 다른 사람들과의 면접이었기에 더 어려웠지만, 이 자리에서 나는 내가 얻게된 이 기회를 잃지 않고 싶어졌다. 부담이 커졌고, 보다 사고와 언어가 경직되었다. 1차의 면접에 비해서 2차의 면접은 마치 일본에게 진 이번의 세번째 경기와도 같았었다. 그럼에도, 이 회사는 나의 채용을 결정하였다. 그 이유는, 내게 있는 장사꾼의 냄새때문이었다고 한다. 다소 실력이 떨어지는 바가 노출되었어도, 실전에서 바이어들에게 제품을 팔 수 있는 본능이 있을 거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어제 한국팀은 세번째의 일본과의 대결에서 졌다. 물론, 나의 승승장구도 마치 새옹지마처럼 어느 한순간에 나쁜 일로 변화하게 되거나, 나자신을 망치는 결과를 낳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팀의 패배가 가슴아픈 것은 그만큼 이기기 어려웠던 상대를 두번이나 부담없이 이겼다는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기는 매커니즘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는 매커니즘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겠다. 야구나 삶은 내가 챔피언이니 이를 방어하겠다는 자세로 살아서는 이기면서 꾸려갈 수 없는 것이다. 삶 속에서 항상 도전자이고,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러나 이기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에게만 승리를 주는 '게임'이다. 지레짐작 포기할 필요도 없고, 무작정 큰 상대에게 주눅이 들 이유도 없다. 노예 근성과 가상의 서열체계에 목매여 승부를 포기하는 바보가 되지 않는한, 한국과 '나'는 다시 승승장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비록 지더라도, 그것을 열등함의 증거로 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한국(적어도 야구팀과 축구팀)'은 세계를 상대로 수많은 게임을 하고 있으며, 그 누구에게도 쉽게 지지 않는 영원한 도전자들이다. WBC에서의 한국팀의 선전은 월드컵에서의 한국팀의 선전 이상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내다보는 것은 오욕으로 얼룩진 이전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미래이며. 그 미래는 이제껏 우리를 누르고 있던 어두운 장막을 거둔 보다 밝은 빛의 세계이다. 그것을 '승리자들의 세계'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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