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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5월 07일
창작자에게 온전한 창작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이제 창작자들이 항변하고 자기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여력이 사라진 시대가 아닐까 싶었다라고 한다면, 또한 너무 진부한 사족을 얹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최근들어 매번 헐리우드 대작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자기 또는 자국 중심주의를 벗어난 창작 그 자체에 대한 몰입을 잃어버린 영화의 한계성이라는 것이다. 문화를 주도하는 국가에서 만들어진 산물로서의 영화는 다소 편향적인 색채를 풍겨도 그 주도성을 인정하는 수많은 타국가에서는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날로 영화산물의 아이디어와 창조성에 대한 포커스가 아시아와 중근동 지방으로 이전하는 얼마전부터의 시기로부터 미국 영화에 대한 비난과 염증은 점점 더 커져간다.
그럼에도 블록버스터를 향해 호주머니를 여는 나와같은 관객들은 같은 돈을 들여서 보는 영화라도 제작비가 많이 든 영화가 남는게 많다는 식으로 생각하며 자기 위안을 하는 경우에 주로 봉착하게 되는데, 스파이더맨 3 역시 그런 카테고리 안에 위치하게 되어버렸다. 스파이더맨 2는 나로 하여금 다시 미국영화를 향해 경배에 가까운 찬양을 하도록 이끌었음에도, 이 신작의 경우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웹 여기저기의 소리들을 차치하고라도 내가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은 도대체 지구 온난화 현상을 맞고있는 작금의 현상마냥 이상해져버린 스파이더맨 3에 대한 아쉬움 그 자체이다. 내가 보는 그 이상현상은 다음과 같다. 1. 너무 많은 적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요청은 감독보다 제작에 참여한 다른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통해 이루어졌다라고 한다. 물론, 대중성을 획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수많은 스파이터맨 만화의 팬들의 소망이라는 것은 일부분이나마 이루어져야했을 부분일 것이다. Sand man으로 족하게 영화를 풀어나가려고 했던 감독의 소박한 희망은 베놈을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제작자의 요청에 의해서 변경되었다. 마치 한국 드라마가 시청자의 반응에 의해서 내용이 바뀌어가는 구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 자본의 집중을 요하는 거대 영화인 스파이더맨의 감독에게 자유의 영역은 임펙트를 키우고 내리는 정도에서만 허용되었던 모양이다. 여기에 이미 Marry Jane과의 열애를 뻗어나가야 하는 스파이더맨에게 이미 원작 만화에서는 시간 순서상 지나가버린 여자가 하나 등장하여 어줍잖은 삼각 구도를 만들어준다. 이 역시 제작자 측의 입김이 작용되었다고 한다. 3. 스파이더맨의 이면이 되는 블랙 스파이더맨의 악행과 고뇌는 포스터의 성격상 명확히 대비되는 것이어야 했음에도 한껏 가벼운 구도로 변화하여 펑키 음악적인 요소를 보이면서 한없이 귀엽게 저물어버리는 효과를 낸다. 무거움을 기피하는 관객의 성향에 한없이 호응하려고 한 것 같다. 결국, 감독만의 색깔과 경향,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어느샌가 실종되어 버린다. 오직, 한층 진일보한 그래픽과 CG가 어지럽게 펼쳐질뿐. 그러나 그 막대한 비용을 가지고 만들었을 그 액션씬들이 너무 뒤죽박죽으로 파편화되어 나타나는 통에, '악당'의 '악당성'과 '주인공'의 '주인공성'은 이른바 호부호형 못하는 관계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를테면, 주인공을 주인공이라 부르지 못하고 악당을 악당이라 부르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해 버린 것 같다. 4. 결자해지라고 했나? 불교에서의 '업'에 대한 깨달음이라도 말하는 양, 악당은 스파이더맨에 의해서 악행의 동기를 갖게 되고 스파이더맨은 악행의 동기보다 악 그 자체의 소멸 또는 자기 우월성의 증명에 몰두하는 듯하다가 서로 자기자신에 의해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반성하고 사과하는 동시에 화해하면서 행복하게 극의 끝을 맺는다. 이 와중에 소멸되어버린 외계 생물 심바오트만이 처절한 응징을 당한 상태가 된다. 결국 스파이더맨의 최대 라이벌로 그려진 존재만이 완벽하게 패배당한다. 팬들을 위한 서비스였을 거라 느껴질 뿐이다. 5. 고블린2가 스파이더맨을 위해 목숨을 버린 것은 고블린1의 윌리엄 데포가 자기자신만을 위해 스파이더맨을 죽이려다 오히려 죽은 내용에 대한 보상처럼 나온다. 아버지의 이중성을 물려받았던 고블린2가 갑자기 집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통합된 착한 성격으로 돌변하는 장면은 남자배우 프랑코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노력으로만 보였고 고블린 가면을 벗긴채 내내 번듯한 얼굴을 드러낸체로 스파이더맨과 싸우는 모습들은 과연 '고블린'이라는 악당의 이미지는 만화에서 무엇이어야 했었던가에 대한 의문을 남겨줄 따름이었다. 6. 나는 스파이더맨 3는 일종의 스파이더맨 만화팬들을 위한 퍼레이드였다고 느꼈다. 일종의 이러한 퍼레이드로부터 소외된 타국 관객들은 영화표를 사기 위해 돈은 내밀었지만, 퍼레이드의 방관자로서 어깨를 늘어뜨린채 집에 돌아가게 된다. 마블 코믹스가 멋지게 번역되어 서점 좌판대를 물들이지 못한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퍼레이드는 왠지 공허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엄청난 비용을 뿌리며 거대한 씬들을 뿌려대며 엄청난 속도로 달린 영화에 대해서 만족감을 조금이라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이 영화에는 거대 자본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바벨탑 건축과도 같은 작업을 해낸 마땅히 존중 받아야할 범 인류적 차원의 투자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아쉽다, 또, 아쉽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 영화는 미국을 벗어난 또한 미국적 문화의 중력권을 일부나마 벗어난 공간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좁은' 공간의 개념 안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불만은 수년전에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 불만의 근저에 있는 것은 오히려 영화 제작이 잘못되었다라는 비판의 뒷편에 있는 문화적 헤게모니, 또는 중심의 이동을 은연중에 부추키고 원하고 있는 남모를 자신감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현시대에 작용되는 대중문화적 긍지를 나 그리고 나아가 우리가 갖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종류의 불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서, 위의 불만은 미국 영화를 제작하는 힘의 일부로서 작용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반영된 것이다. 비단 영화 그 자체가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는 위협받고 비난받고 공격당하고 일부는 무너져가고 있다. 오로지 막대한 자본력을 그 승부처로 한 공간들에서야 그 헤게모니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 스파이더맨 3에 대한 불만은 곧 그 헤게모니 자체에 대한 각각의 공격이다. 또한 자본과 속해있는 공간, 그리고 자국민들의 관심 자체에만 천착한, 제대로 된 세계성을 획득하지 못한 창작물에 대한 짜증이 섞인 일갈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에 최근에 보았던 영화인 극락도 살인사건과 이 영화 중에 단 한편만 꽁짜로 다시 볼 기회를 달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도 '스파이더맨3'를 주저없이 택할 것이다.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이 한국적 어촌 스릴러가 갖고 있던 여러가지의 불만스러운 부분들은 지금 내가 스파이더맨3에게 갖고 있는 불만을 포함한채로 더더욱 많아지니까... 결국 영화를 만들지 못한채로 보통 비판만을 일삼는 사람들의 한계는 어디까지나 자기 기준에 따른 불만에 한정될 따름이며 때로 욕했던 그 영화 자체를 더 사랑하고 칭찬했던 영화 그자체를 더 경원시하는 입장에 봉착한다. 스파이더맨에게는 더 잘 달리라는 채찍이 몰아쳐진 것이고 극락도 살인사건에게는 출구가 없는 듯한 꺼림직한 떡하나가 주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스파이더맨은 조금만 더 창작의 여지를 감독에게 더 허락해주고, 타국 관객들에 대한 약간의 배려만 주어졌어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낳는 '출구'라는 것이 존재한다. 극락도 살인사건은 그 약점을 보완했을 때 보다 나아질 부분의 한계가 그다지 넓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 넓지 않은 한계의 범위까지만이라도 한국 영화는 좀 더 수준을 끌어올려야만한다. 부족한 자본의 힘으로라기 보다는, 보다 엄격하고 에너지 넘치는 다양한 범위의 창작의 힘으로, 그리고서 자국의 범위를 벗어난 세계성을 획득해야만 한다. # by Roman | 2007/05/07 19:41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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